게오르크 린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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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독일 국방군의 상급대장
2. 초기 행적[편집]
작센 주 오스터부르크에서 판사의 아들로 태어난 린데만은 하노버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03년에 프로이센군에 입대해 사관으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종군했다. 종전 후 의용군에 잠시 몸담았던 그는 1919년에 함부르크에서 발생한 공산당 노조를 공격하는데 참가하기도 했다.
3. 바이마르 공화국[편집]
바이마르 공화국의 육군에 발탁된 린데만은 1930년에 제13 기병연대의 지휘관으로 취임해 1931년에 중령으로 승진했다. 하노버의 군사교관으로 있다가 1936년에 소장으로 진급한 린데만은 10월에 제36 보병사단장으로 취임했다.
4. 제2차 세계 대전[편집]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여 폴란드 침공 때 자르 지방의 수비를 담당한 린데만은 다음 해의 서부전선을 돌파할 때 마지노선을 뚫고 베르됭에 도달했다. 이 공적으로 린데만은 기사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이후 제50군단 사령관으로 부임하여 기병대장으로 승진한 린데만은 바르바로사 작전 때 북방군 집단에 소속하여 레닌그라드를 목표로 진격했다. 레닌그라드 남쪽의 가치나시는 독일군이 점령한 기간동안에 린데만의 이름을 따서 <린데만슈타트>라 불렀다. 다시 중앙군 집단으로 이동한 린데만은 스몰렌스크 작전에 참가한 후 북방군 집단으로 돌아왔다. 1942년 1월 16일에 제18군의 사령관이 되어 상급대장으로 승진한 그는 레닌그라드에서 소련군의 반격을 격퇴하고 안드레이 블라소프 장군을 포로로 잡는 등 전공을 세웠다. 1944년에 레닌그라드에서 나르바까지 후퇴한 린데만은 거듭 된 패전으로 해임된 게오르크 폰 퀴힐러 장군의 후임으로 북방군 집단의 사령관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이미 소련군의 대규모 반격작전으로 중앙군 집단이 붕괴된 상황이라 그는 제16군의 후퇴를 주장하면서 진격명령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분노한 히틀러는 그를 고령의 심신장애를 이유로 해임하고 말았다.
5. 전후 행적[편집]
1945년 2월 1일에 덴마크 주재의 독일군 최고사령관으로 부임한 린데만은 현지에서 종전을 맞이했다. 그 후 미군에게 포로가 된 그는 전쟁범죄의 혐의가 없었기에 1948년에 석방된 후 서독에서 은거생활을 보내다가 1963년에 플로이덴슈타트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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